한 장의 일기, 그리고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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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대학생, 한 명의 무명 음악 프로듀서, 한 명의 정신질환자, 사랑이 뭔지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어 사랑을 이해 못해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남자, 그리고 모국의 부패한 정치와 불공정, 자라오면서 받은 혐오와 비난 때문에 자신의 조국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 저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수식어는 많습니다, 가령 ‘로봇공학자 지망생’, ‘과학자 지망생’, ‘일러스트레이터/애니메이터 지망생’, ‘디자이너 지망생’, ‘음악가 지망생’, 그리고 “매번 이루지 못할 헛된 꿈만 꾸며 살아온 사람” 등이 있겠지요.

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계속 툭 하면 죽고싶다는 말이나 내뱉고 정신적으로 개판이 되어가는가 하면, 항우울제를 먹고 나서 매일 하루종일 피곤해서 쓰러져있는 적도 여러번 있었고, 툭 하면 복통과 열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주변에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따로 없었기에 저는 아픈 날에는 밥도 못 먹고, 병원에도 못 가고, 해야하는 일도 못 하고, 그저 가만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부모님은 1년 이내로 졸업 못 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이니 그런 줄 알아라 하시네요. 졸업 못 한 채로 귀국하고 나서 막노동이나 하고 다닐지 나가서 굶어죽을지는 네 인생이니 뭐 알아서 하라고. 그리고 돈이랑 시간 아까우니 정신과 의사 만나서 처방전 받고 항우울제 먹고서 빌빌거릴 여유 있으면 그 시간에 공부나 더 빡세게 하라고. 뭐,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반박을 하고싶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살아남을 능력이 없으면 죽어라, 그게 자연의 섭리이니 별 수 없다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제가 지금까지 어떻게든 공부를 해내려고 했던 노력,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노력, 취미로 해왔던 활동, 그리고 그 외의 것들 모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한낱 장난질에 불과하니, 저도 이제 전부 내려놓고 그만둘까 싶습니다. 제 몸 상태나 정신 상태나, 지금 상태가 안 좋은 걸 인지해도 더 이상 무언가를 발전시킬 능력은 저에게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제가 정말로 무언가 업적같은 것을 세운 적이 있기는 한 것인지 잠시 생각을 해봤습니다. ‘모터 2개와 적외선 센서가 포함된 교구로 A*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자율주행차량 비슷한거 만들기’, ‘단순 독학만으로 노래 만드는 법을 익혀 스포티파이 조회수 9000 달성하기’, ‘마이크로컨트롤러를 사용하여 TV 리모컨 복제품 만들기’, ‘국내 교구 회사에서 개최한 창작 대회에서 불쾌한 골짜기 어딘가에 있는 사람 얼굴모양 만들어 상 타기’, ‘딱히 진짜 사람들이 방문하진 않지만 많은 봇들이 스팸 메세지 남기려고 브루트포스를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돌아가는 웹사이트 (The Pseudoartist Clan 웹사이트 이야기 맞습니다) 운영해보기’ 같은 이상하고 잡스러운 것들을 보면, 확실히 뭔가 대단하다고 느낄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너무나도 멍청해서 대학 공부를 실패한, 그런 한심한 놈에 불과하죠.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때로는 문제 해결이란 퍼즐과도 같아서 문제를 야기한 요인을 찾아내고 분석하면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이전에 퍼즐을 종종 즐기던 저는 컴퓨터 과제 등을 하면서 문제 해결 능력을 나름대로 키워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과 관련된 문제는 제가 직접 해결하진 못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저에게 문제를 안겨주었던 요인들부터 살펴볼까요? 암으로 투병 중이신 아빠의 건강상태, 어릴 적부터 남았던 트라우마, ‘자칭 보컬로이드 팬 커뮤니티’ 회원들의 장기간동안 지속되었던 공격과 협박, 국방의 의무 등과 연관되어 복잡하게 되어간 법적인 문제 등. 계속해서 악화되어가기만 하고 저를 옥죄고 있는 요소들을 나열해보라고 하면 아마 수천개는 나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제가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도 못 찾겠더군요. 지금 나는 내 삶이 행복한가? 아뇨. 지금 나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아뇨. 내가 죽으면 자기도 죽어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나의 존재에 진심인 사람이 있는가? 제가 그렇게 좋으신 여자분이 계시다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경쟁자도 없겠다, 결혼까지 해드릴게요.

제가 정말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는 한 것일까요? 몇몇 사람들은 말하겠죠, 그냥 내 노력이 부족했을 뿐이라고. 올바른 곳에 투자할 줄 알고,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무언가에 과민반응하지 말고, 그냥 불평불만 늘어놓고 게으르게 있을 게 아니라 그 시간에 입 닥치고 할 일을 했으면 진작에 무언가 이뤄낸 게 있기는 했을 거라고. 지금까지 나에게 안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은 그저 내가 게으르게 있었을 뿐이라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고. 그래요, 반박하고 싶진 않네요. 결과만큼 중요한 게 또 어딨겠습니까? 결과만큼이나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없고, 의도가 어찌되었든 간에 무언가를 제대로 다뤄내지 못 해 잘못된 결과를 도출해낸 사람들을 비판한 적이 몇 번 있었던 만큼, 그 말이 잘못되었다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저는 그냥 다 잘 될 거야 라고 하면서 진짜로 몸이 다 닳다 못해 없어질 때까지 계속 도전하고 실패를 반복해도 상관없는 그런 낙천주의자가 아니란 것이죠. 저는 모든 상황에서 ‘의도’를 ‘결과’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요구하는 것은, 저나 다른 사람이나 누군가에게 무작정 모든 것을 어느 기준에 놓고서 비난이나 비판할 것이 아니라, 개인이 겪고 있는 배경 상황이나 어려움 등을 먼저 파악하고 다른 해결방안을 제시하거나 어떠한 설득을 하려고 할 때 친절하게 대해주는, 그러한 리더십을 갖추기를 바라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제가 위험에 처해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만큼은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이끌어가고자 노력하는 편이라 생각합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잖아”, 이런 말씀은 사양하겠습니다. 공부가 아니어도 다 망했거든요. 스포티파이 팔로워 수 33명, 유튜브 구독자 수 211명, 트위처 팔로워 수 114명. 대단할 건 눈 씻고 봐도 하나도 없을 정도로 처참해보이지 않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너희 가족이 구원받으리라” 같은 종교적 발언은 전부 차단하겠습니다. 저라고 신을 안 믿어봤겠습니까, 한 때는 너무 힘들지만 의지할 곳이 없어, 교회를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매번 저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그리고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뭐가 달라졌습니까? 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죽고싶어서 환장한 새끼에 불과하고, 제 미래는 과거나 지금이나 어둡다 못해 앞이 아예 안 보일 정도죠. 그래서 저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다, 만약 존재했다 하더라도 신은 많은 사람들이 찬양하는 것처럼 공정하고 대단한 그런 존재가 전혀 아니다 하고 모욕을 한 적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 만약 신이 진짜로 있다면 제가 앞으로 헌혈을 몇 번을 더 하고 기부를 얼마나 더 하고 누구를 얼마나 더 도와주는지에 관계 없이 죽어서 지옥에 가겠군요. 저는 사후세계라는 것이 없기를 바랍니다.

뭐, 불평은 여기까지만 늘어놓겠습니다. 이 이상 말해봤다 다들 듣기 싫다고나 하지 뭔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도 그냥 다 내려놓고 죽음을 기다리며 죽고자 하는 한 명의 패배자로 남아있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제가 무슨 글을 쓰고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이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 영향력은 저에게 평생 주어지지 않겠죠. 그래서 일단은,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악 물고 매일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가며 공부를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하고, 다른 활동은 우선 전부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의사의 조언을 받아 수면다원검사는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혹시 모르죠, 혈액검사로도 못 찾아낸 제가 항상 피곤해하던 다른 이유를 운 좋게 찾아낼지. 뭐, 개인적으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만.

지금까지 저를 응원해주셨던 소수의 분들께 매우 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비록 숫자는 적을지라도, 여러분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 저에게는 너무나도 각박한 세상에서 그나마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공간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모든 활동을 접어야겠지요. 그러니 이만 인사를 드리고 떠나가려 합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비하인드 스토리는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장례식이라던가, 환생이라던가, 신이라던가, 천국과 지옥이라던가, 제 이야기에서 이런 이야기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온전한 소멸이 지금으로서는 저의 목표입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괜히 저처럼 고통에 시달리다 저 깊은 곳에 빠지는 사람이 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Producer.P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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