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죽어서도 저주할거야’, ‘죽어서도 사랑할게’. 죽고 나서도 특정 대상에 대해 특정 감정을 느끼겠다는 말을 종종 쓰고는 한다. 물론 이러한 말들은 ‘내가 이렇게 표현할 정도로 이러한 감정을 강하게 느끼고 있어’ 라는 식으로 과장을 위해 사용되는 표현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가끔은 누군가가 한 말을 그 말 그대로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 이번 주제인 ‘영원한 사랑의 존재 여부’ 또한 이러한 대화 방식으로부터 나오게 되었다.

흔히 ‘사랑’을 상징하는 모양. 우리는 이를 하트 모양이라 부른다.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화의 시작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란 없다.영원하다는 것은 무언가가 유효한 기간이 무한하다는 것, 다시말해 기간에 끝이 없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함의 정의를 알면 영원함의 정의 또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남겨야 할 질문은, 이 세상에 무한함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에 무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 컴퓨터가 저장할 수 있는 가장 큰 정수는 Unsigned 64비트 정수 최대값인 18446744073709551615이다. 우주의 넓이는 아직까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해 ‘상대적 무한함’으로만 여겨지고 있을 뿐, 우주에는 끝이 있으며 아직까지도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다. 모든 생물은 언젠가 죽고, 외부적 요인이나 유전적 결함 등의 이유로 인해 멸종하기도 한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고 일컫는 것은 ‘누군가나 무언가에게 성적인 호감을 느끼거나 대상을 매우 좋아하게 되는 부드러운 느낌을 깊게 느끼는 감정’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읽고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감정’이야말로 비논리적이고 부정확하면서도 인간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확실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감정’이라는 것을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감정’은 빛과 소리 등 신체의 감각기관에서 신경계를 통해 뇌로 전달되는 전기 신호화 아드레날린, 도파민, 티록신 등 ‘호르몬’으로 분류되는 유기물질의 화학적 반응 등에 의해 생겨난 복합적인 생리적 현상으로 정의될 수 있는데, 이렇게 정의하게 될 경우 ‘감정’이라는 것은 육체가 분해되고 나서는 신경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어 죽어서는 감정을 느낄 수가 없으므로 ‘죽어서도 증오하겠다’, ‘죽어서도 사랑하겠다’ 등과 같은 선언은 절대로 유효해질 수 없는 선언이 된다. 무엇인가 ‘영원하다’라고 정의한다면 그것은 몇 세대 뒤, 몇억년 뒤에서도 유효할 정도로 오래 남는 것으로도 모자라 끝나는 시점이 없어야 하는데, 수명이 길어봐야 120년인 인간이 특정 대상을 떠올리며 특정 전기신호와 특정 호르몬의 비율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2018년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보통 여성은 31.9세에 첫째, 33.6세에 둘째, 35.1세에 셋째를 낳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더불어 한국인의 초혼 연령은 남성의 경우 26~58세, 여성의 경우 24~49세에 가장 많이 분포가 되어있다. 의학계에서 주장하는 평범한 인간 한 명의 수명 한계치는 115년, 인간의 평균 수명은 79세 정도인 점을 고려할 경우 사람이 누군가를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했을 때 연애 시작에서 결혼까지 걸리는 시간을 오하이오 대학 크리스토퍼 교수가 작성했던 논문 속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 전 연애 기간의 평균값으로 확인된 2년 정도로 정하면 ‘한 명’이라는 개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랑의 최대 기간은 이성의로서의 사랑은 55~91년, 부모의 자식을 향한 사랑은 47~83년 정도라고 계산할 수 있다. 이렇게 숫자로만 보면 짧아보여도 전체 수명의 %로 따져보면 전체 수명의 약 71% 기간동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야기이므로 짧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인생은 원래 짧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누군가에게 주고 있는 사랑이나 누군가로부터 받는 사랑이 언젠가 멈출 것이라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원래 세상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고, 무언가의 끝은 다른 것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른 물적 자원과 달리 시간과 감정은 어딘가에 저장될 수 없으니 아무래도 돈이나 돈으로 사는 물적 자원과 달리 감정은 원하는 감정 한정으로 즐길 수 있을때 마음껏 낭비하며 즐기는 것을 권장한다. 그래도 뭔가 아쉽다면 종교를 믿는 것 또한 좋은 방안이다. 많은 종교가 인간은 생물학적 죽음을 맞이한 뒤에도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어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과학을 주장하며 사랑에 끝이 있다고 단정지어 버리는 것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는가? 어쩔 수 없다. 과학이라는 것은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들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현실에 기반한 학문이고, 그러한 과학이 존재하는 현실에서의 삶이란 것은 살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죽이고 그렇게 살아온 삶을 죽음으로 마무리해 다른 종의 음식으로 돌아가는 기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니까. 너무나 문학적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수학으로 풀어버리려고 했을 때 결과물은 잔혹하기 마련이다.
 
굳이 이번에 따져본 내용만이 아니더라도 중간에 이혼하는 부부나 바람을 피우는 연인들을 보면 사랑 또한 유한하다고 표현할 수 있음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된다. 사랑에도 단위가 있다면, 내가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쉽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 Rhythmixer, 2019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잠들기 전에 갑자기 떠올라 제시하게 된 의견에서 시작되었다. ‘영원함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주제에서 너무 엇나가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원본 글에서 당장에 논란이 될만한 요소가 있는 만큼, 해당 글에 지리님이 이의를 제기하며 영원한 사랑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감정은 수학적으로 따질 수 없는 요소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죽어서도 증오하겠다’, ‘죽어서도 사랑하겠다’ 등과 같은 선언은 절대로 유효해질 수 없는 선언이 된다. ” 라는 문장에서의 오류는 죽어서도 증오하고 죽어서도 사랑하겠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언어는 표면적인 글 외에 속에 의미가 담겨있다. 죽어서도 사랑하겠다는 정말 사실적으로 영원히 사랑하겠다가 아니라 그만큼 너를 사랑한다, 또는 죽어서도 증오하겠다는 그만큼이나 널 증오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 그런 의미를 무시하고 표면적인 글 자체만으로 따지면 당연히 유효한 선언이 아닐수 밖에 없다.

종교같은 경우에는 과학적인 증명이 어렵고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학문자체가 아님을 고려하면 이러한 내용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장 개개인의 생각이나 감정등이 과학적으로 정확히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방식은 오류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세상에 영원한 사랑은 없겠지만 누군가가 나한테 그만큼 나를 사랑한다라고표현하는데 굳이 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기는 한가 싶다.

– JiRy, 2019

그렇다. 어쩌면 ‘영원한 사랑’의 실존 여부를 따지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비관적인 관점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판단되게 하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것은 사업이 아니다.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 따져보며 항상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단순한 욕심이라고 봐야 맞는 것이다. 결국 원본 게시글 작성자는 ‘죄송합니다, 제가 사랑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요’ 라고 말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미안할 만 하다. ‘사랑’이라는 큰 대상을 단순 통계에 집어넣어 너무 가볍게 다루려고 했으니까.

그래도 ‘사랑’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는 아직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다. 사전에서 ‘사랑’의 의미는 아무리 찾아봐도 ‘좋아한다’, ‘애착을 느낀다’, ‘호감을 갖는다’ 등의 유의어가 계속 등장하면서 일종의 교착 상태를 형성하기 때문에 사랑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랑과 열역학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원한다. 사랑받기도 원하며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기도 원한다.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슴속의 어떤 뭉클함이나 알 수 없는 어떤 두근거림을 우리는 ‘사랑을 느낀다’ 라고 표현한다. 이런 행복의 감정을 언제까지고 느낄 수 있다면 더욱 바랄 것이 없지 않겠는가.

최근 사랑의 한계를 자주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속에선 용기가 불끈 솟아오르고 관심 없던 분야의 지식들도 그녀가 궁금해하면 내가 가장 궁금해하며 찾아보고 공부하는 분야가 된다.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며 가꾸게 되고 더욱 발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랑은 이렇게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영원히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마치 박수와 같아서 서로 짝이 있어야 정석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고 짝이 없는 사랑은 짝을 찾아 헤메는 사랑이라 하여 짝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금술이 좋은 잉꼬부부라 소문난 사람들도 결국에는 오랜 시간 끝에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말로 사랑을 끝마치게 된다.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생전에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드리고 평소 아버지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은 사랑의 감정에서 경외감이나 존경심으로 바꾸어서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사랑은 모양을 바꾸어 다른 감정으로도 자리를 잡게 되며, 처음 시작하여 절대로 끝나지 않는 사랑이란 생각하기 힘들다. 이럴수록 사랑이란 감정을 이해하기 힘들어지는데, 사랑을 조금 재미있는 방법으로 관점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사랑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만큼, 열역학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우리가 더 쉽게 이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 한번 정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열역학의 법칙은 4가지로, 0법칙부터 3법칙까지 존재한다.

열역학 제 0법칙: 물체 A와 B가 다른 물체 C와 각각 열평형을 이루었다면 A와 B도 열평형을 이룬다. 즉, C와 각각 열평형 상태에 있는 A와 B는 열평형을 이룬 상태이다.

열역학 제 1법칙: 계의 내부에너지 변화는 계가 흡수한 열과 계가 한 일의 차이이다. 즉, 내부 에너지는 열의 형태로 더해지면 증가하고, 계가 일을 하면 감소한다.

열역학 제 2법칙: 고립계에서 총 엔트로피의 변화는 항상 증가하거나 일정하며 절대로 감소하지 않는다. 즉, 에너지 전달에는 방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역학 제 3법칙: 모든 순물질의 완전 결정의 엔트로피는 절대 영도에서 0이다.

이렇게 보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를 수 있어도 잘 보면 사랑과 많이 닮았다.

우선 0법칙. 가장 나중에 증명되었지만 열역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이라 0법칙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열평형이란, 두 물체간 발생하는 온도 차이에 의해 열 교환이 서로 일어나며 두 물체 모두 같은 온도로 변해 일정 온도를 유지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랑에 비유해보면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사랑을 매일매일 꾸준히 느끼게 해준다. 처음에 B는 그런 A를 보며 시큰둥 하는 마음이 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A가 달라보이고 너무 잘해주는 A에게 호감이 생겨난다. 하지만 A는 자기가 지금껏 열심히 구애하고 노력해봤지만 받아주지 않는 B의 모습을 보며 A의 감정은 점점 사그라들어간다. 이러다 A와 B의 사랑 수준이 비슷해지게 되면 서로 의견이 통해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열역학 제 1법칙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다. A가 사랑을 주면 B가 사랑을 느끼게 되는 대신, A는 마음 속에서 사랑을 잃는다.

열역학 제 2법칙을 보면 엔트로피의 변화는 절대 감소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데, 따져보면 엔트로피는 호감도에 대입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이 상대방에게 정말 ‘사랑’을 줬다면 상대방은 무조건적으로 호감도가 증가하게 된다. 당신이 상대방에게 정말 ‘사랑’을 줬다면, 상대방은 무조건적으로 호감도가 증가하게 된다. 만일 상대방이 되려 화를 내고 거부한다면 당신이 준비한 그것이 정말로 ‘사랑’이 맞는지, 아니면 개인의 욕심이 담긴 독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열역학 제 3법칙을 보자. 모든 순물질의 완전 결정의 엔트로피는 절대 영도에서 0이다. 나는 이 문장을 사람의 사랑이 0이 되는 순간은 절대 영도, 즉 죽음을 느낄 때라고 해석할 수 있을거라 느낀다.

지금까지 나온 내용을 살펴보면 당신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면 상대방은 무조건적으로 호감도가 상승하게 되지만 당신이 ‘사랑’을 준 만큼 당신의 ‘마음 속’에서는 ‘사랑’이 감소한다. 자신의 ‘사랑’과 상대방의 ‘사랑’의 수치가 비슷해지면 연애가 시작되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 마음이 점점 변질되어 ‘독’을 주게 되면 결국 상대방은 죽음(정신적/사회적/육체적)을 맞이하여 사랑이 제로(0)화 되어버린다.

하지만 여기서 절대적인 법칙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 바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은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전환될 때, 전환 전 후의 에너지 총합은 항상 일정하다는 법칙이다. 즉, 죽음을 맞이하여 사랑이 0이 되더라도, 사라진 사랑은 마음속에 다른 형태로 남아있게 된다.

아직 정확하게 ‘사랑은 이것이다!’ 라고 할 수는 없어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한다. 자신의 사랑이 영원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사랑이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방법으로 끊기게 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 사랑은 또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는 방식으로 영원히 순환되어 영원한 사랑은 존재한다 라는 주장의 뒷받침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 FLUvirus, 2019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까지나 의문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의논의 주제인 ‘사랑은 영원할 수 있는가’는, 결국에는 명확한 결론을 얻어낼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결국에는 사랑의 영원함이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또 그러한 관점에서 나온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로서의 결론

‘사랑’이라는 것은 미지의 존재다. 그 자체에 대한 확실한 정의는 내려지지 않았고, 다른 감정으로 쉽게 변질될 수도 있으며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존재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어찌보면 무언가를 너무 따지려고 보는 듯한 사치스러운 질문처럼 들릴 수 있어도 다른 한 편으로는 감정에 대해 더 깊은 깨달음을 갖게 하고 근본적인 지식을 쌓아 앞으로의 행실에 크게 관여할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된다면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생각해보자.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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